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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CYCLOPEDIA OF CHE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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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의 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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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의 정석
이재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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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의 유래
작성자 : 관리자(jaysgroup@jaysgroup.co.kr)  
작성일 : 18-10-25   조회수 : 2175

피자의 유래 

 

피자(Pizza)라는 말은 그리스어의 오일과 마늘, 양파, 허브가 토핑 된 납작하고 둥근빵의 명칭인 플라쿤토스(Plakuntos)가 라틴어의 플라첸타(Placenta)로 바뀌고 플라첸타가 피자(Piza)로, 피자가 피짜(Pizza)로 바뀌어서 피자의 어원이 되었다는 주장이 유력하지만, 이탈리아어의 납작한 빵을 뜻하는 피타(Pitta)가 피자의 어원이라는 주장과 영어의 a point가 어원이라는 주장도 있다. 

기원전1000년경 이탈리아 반도에 거주하던 에투루리아인들이 납작한 형태의 빵을 만들어 먹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를 피자의 유래로 추정하고 있다. 그 이전인 신석기 시대에 이미 야생 밀을 물에 불려 삶은 후 으깨어 납작한 돌 위에 놓고 구워먹은 흔적이 나왔으며, 에투루리아인들은 그것을 발전시켜 납작한 돌에 곡물 반죽을 얹어 구우면서 그 돌을 재에 묻고 요리하여 빵에 훈제한 것과 같은 향이 나게 해서 먹었다. 그리고 이 납작한 빵을 구운 후에 기름과 허브로 양념하여 먹을 정도로 발전된 조리법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기원전 730년경부터 발전된 제빵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그리스인들이 이탈리아 남부지역에 진출하면서 구운 후에 양념하는 에투루리아인의 납작한 빵을 반죽 상태에서 오일과 양파, 마늘, 허브 등을 양념한 후에 굽는 방식으로 발전시켰는데, 이 빵을 피자의 어원으로 추정되기도 하는 플라쿤토스(Plakuntos)라고 불렀다. 그리스인은 이집트로부터 이스트(Yeast)를 가져와서 밀가루 반죽을 발효시키고, 빵의 가장자리가 부풀어 오르게 만들어 토핑이 흘러 나가지 않게 하였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빵에 기름과 허브, 치즈를 얹어서 먹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로마에서는 얇은 밀가루 반죽에 치즈와 꿀을 토핑하고 월계수 잎을 향신료로 쓴 플라첸타라는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플라첸타(플라쿤토스)를 피자로 발전시킨 것은 고대의 로마인이었다. 그러나 고대의 플라첸타에는 오늘날 피자의 맛을 결정하는 핵심요소라고 할 수 있는 모짜렐라 치즈와 토마토 소스가 들어가지 않았으며, 모짜렐라 치즈와 토마토 소스가 사용된 것은 18세기 말에 이르러서이다. 이탈리아에는 지금도 모짜렐라 치즈와 토마토 소스를 사용하지 않은 플라첸타 형식의 피자가 많이 있다. 

토마토는 16세기에 멕시코에서 유럽으로 들어왔지만, 18세기에 와서야 현대 피자의 창시자라 불리는 나폴리 요리사들에 의해 토마토 소스가 피자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피자는 최초의 근원지인 폼페이보다 나폴리에서 큰 인기를 누리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며 현대 피자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런 연고로 나폴리 사람들은 피자의 근원지를 폼페이가 아닌 나폴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1783년에는 나폴리에 세계 최초의 전문 피자점이 생겼다. 그 이전까지 피자는 파스타처럼 길거리 노점에서 직접 요리해 팔았다. 세계 최초로 등장한 전문 피자점은 뽀르딸바(Port’ Alba)로 이 곳은 벽돌로 만든 화덕에 나무로 불을 지펴 피자를 구웠으며, 그 이후에는 벽돌보다 베수비오 화산의 돌로 만든 화덕이 유행했다. 

당시 나폴리를 지배하던 부르봉가의 페르난도 1세는 피자를 좋아해서 평민 복장을 하고 피자를 파는 나폴리의 빈민가를 종종 찾았다고 하는데, 피자가 길거리 음식이라는 이유로 왕비가 왕궁에서는 피자를 금지하였기 때문이다. 그 후 힘에 부친 페르난도 1세는 자신이 피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왕궁에 공개하였고 결국 왕비가 왕궁에서 피자를 먹는 것을 허용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왕비 자신도 피자를 좋아하게 되었다. 페르난도 1세의 피자 사랑은 서민의 음식이었던 피자가 부유한 상류층과 왕족들에게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페르난도 1세의 손자인 페르난도 2세는 한술 더 떠 아예 왕궁에 피자 화덕을 설치하였다. 그런 가운데 피자는 나폴리의 전통음식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유명한 마르게리따 피자는 1889년에 등장한다. 당시 독립한 이탈리아를 다스리던 움베르토 1세와 마르게리따 왕비는 피자를 먹어본 적은 없었지만 작가나 예술가들을 통해 피자의 명성을 익히 듣고 있어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마르게리따 왕비에게 피자를 대접하기 위해 당시 가장 유명한 피자 요리사였던 라파엘 에스뽀지또(Raffaelo Esposito)가 왕궁으로 초대되었고, 요리사는 가장 전통적인 피자들을 만들어 왕비에게 선을 보였다. 그 중 하나가 이탈리아 국기의 녹색, 흰색, 적색의 3색을 상징해 바실리코(녹색), 모짜렐라 치즈(흰색)와 토마토(적색)를 넣어 만든 피자였는데, 왕비는 단번에 이 피자에 반하게 되었고, 요리사인 라파엘 에스뽀지또는 왕비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이 피자의 이름을 마르게리따 피자라고 명명하였다. 

그러나 나폴리에서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피자는 나폴리에서만 유명했을 뿐 이탈리아 전역으로 퍼지지는 않았다. 피자를 이탈리아 전역으로 확산시킨 것은 나폴리가 아닌 미국이었다. 또한 피자가 세계인의 음식으로 발돋움하게 된 근원지 역시 미국이다. 1905년 뉴욕에서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에 의해 롬바르디스 피자(Lombardis Pizza)와 그리말디스 피자(Grimaldis Pizza)가 오픈했는데 서로 최초라고 주장하고 있다. 두 피자점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곧 피자는 미국의 상업성과 맞물려 대량 생산의 기틀을 마련해 대형 피자매장과 대형 메이커를 창출하면서 세계 곳곳으로 피자를 확산시켰다. 피자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조차도 나폴리에서 이탈리아 전역으로 확산된 시기가 미국에서의 인기가 확인된 이후인 1960년대에 이르러서였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미국 동부에서 시작된 피자는 서부로 이동하면서, 뉴욕스타일, 시카고 스타일, LA스타일 등 3가지 형태로 발전되었다. 뉴욕 스타일은 피자 도우를 밀가루에 묻혀 손으로 늘린 얇은 크러스트를 돌 판에 굽는 방법으로 기름을 적게 사용하므로 담백한 맛을 낸다. 이것이 시카고 쪽으로 건너가게 되면서 크러스트가 더 두꺼워지면서 기름을 사용하는 팬 피자 형태가 되었고, 이것이 서부 LA에서는 더욱 고급화된 토핑을 얹은 고급식당의 요리로 발전하게 되었다. 

세계 최대의 피자 프랜차이즈 회사가 된 피자헛(Pizza Hut)은 1958년에 생겼는데, 미국 캔자스주 위치타 주립대학(Wichita State University)에 재학 중이던 카니(Carney) 형제가 부모에게 빌린 미화 600달러를 가지고 학교 근처의 작은 가게를 빌려서 피자헛(Pizza Hut)이란 상호로 오픈한 것이 오늘날 세계적인 피자헛의 시작이다. 카니형제는 가게가 너무 좁아서 배달 영업 밖에 할 수가 없었는데 배달 시스템이 없었던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방법이었고 예상을 뛰어넘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약점이 오히려 피자헛의 성공비결이 되었다고 하니 흥미롭다. 1977년 카니형제는 미화 3억 달러를 받고 펩시(Pepsi)그룹에 피자헛을 매각하였다. 

우리나라에는 1972년 서울 명동의 유네스코 빌딩에 피자가게가 오픈한 것이 최초이며, 1985년 피자헛이 진출하면서 본격적인 피자 시대가 열리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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