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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의 정석

치즈의 정석 표지
치즈의 정석
이재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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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의 치즈 역사 - 대한민국
작성자 : 관리자(jaysgroup@jaysgroup.co.kr)  
작성일 : 19-02-11   조회수 : 697

 

대한민국 

 

많은 사람들이 서구와의 교류가 시작된 20세기에 우리나라에 치즈가 전파되었고, 우유를 먹는 문화도 서구를 통해 전파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이미 삼국시대에 백제인 '복상'이 일본의 고토쿠 천황에게 우유를 하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삼국시대부터 우유를 먹는 식문화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명종 때는 연의대부 이순우의 상소문에 '수'라는 식품이 언급되는데 그 식품은 우유에 열을 가해 농축시킨 것이다. 삼국유사에도 농축유제품을 의미하는 '락()'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오래전부터 한반도에서도 우유와 치즈를 즐겼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우왕 때는 왕족과 귀족층에게 각종 유제품을 공급하기 위해 국가 상설기관으로 유우소(乳牛所)라는 목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세종대왕은 특권 계층을 위한 유우소가 너무 커지자 이에 대한 폐단을 막기 위해 폐지했고, 숙종 때는 환자의 치료 목적이 아닌 이상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왕이 특별히 하사한 낙죽(우유죽) 외에는 유제품을 먹지 못하도록 하는 등 우유와 치즈는 대중과 격리된 채 왕족을 비롯한 일부에게만 소비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구한말에 젖소가 도입되어 우유나 치즈를 보게 되었을 때 사람들이 생소해 했던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일본에서는 메이지유신 이후 서구의 식습관을 따라잡겠다며 유제품 소비를 권장했고, 그렇게 입맛이 바뀐 일본인들이 한반도에 이주하게 되자 한반도에도 목장이 들어선다. 일본인들이 몰려 살던 서울역, 청량리 일대에 목장이 들어섰고 청량리 농유조합이 설립되어 최초로 우유를 시판하게 되었다 

이렇게 우유가 판매되기는 했지만 대부분 일본인을 위한 것이었고, 1960년대에 들어 정부의 낙농 장려 정책이 시행되기 전까지 우유 산업은 부흥하지 못했다. 정부의 정책에 따라 매일유업, 남양유업, 빙그레 등의 유가공업체들이 설립되었고 이후 분유, 연유, 치즈, 아이스크림 등 유가공품의 대량생산이 시작되어 그제야 비로소 대중들은 치즈를 접하게 된다 

한국인들은 유전적으로 유단백을 소화시키는 효소가 부족하기에 좀처럼 우유와 치즈 맛에 익숙해지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한동안 우리나라에서 소비된 치즈는 맛과 향을 첨가한 가공 치즈가 대부분이었다. 우리가 치즈라고 하면 노란색의 슬라이스 치즈를 연상하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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